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면, 우리 가족이 공유하는 집의 거실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된다. 조금은 시끄럽고, 분주하고, 가끔은 사납기도 한 공간이 조용하고, 아늑하지만 외롭기도 한 공간으로 바뀐다. 회사를 그만둔 지 4년이 흘렀고 그간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없을 땐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에 할애했다. 그림책, 소설책, 에세이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며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말과 행동을 돌아봄으로써 더욱 나은 인간이 되고 있다 믿었다. 독서 외엔 특별한 취미도 관심사도 없고 사람 만나길 즐기지도 않는 탓에 집과 도서관, 카페를 오가며 이동반경이 고작 100미터 남짓되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점에 불과한 동선을 가진 사람이 되어 갔다. 홀로 책 읽는 시간이 오래되었고 점점 이동과 만남이 사라지면서 고독감과 우울함이 살을 파고들었다. 최근에서야 독서와 육아로만 이루어진 내 삶에 슬픈 감정이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책 읽기를 잠시 중단했다. 독서 하수에 불과한 내 경우는 그랬다. 성격 탓도 있을테다. 과하게 몰입하고 죄책감도 잘 느끼는 나에게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내가 몰라봐서 미안하거나, 악한 주인공에게서 나를 발견하거나, 이런저런 여러가지 연유로 반성 짙은 시간을 매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과한 성찰과 반성이 독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예전의 생기를 되찾기 전까지 다른 세상을 기웃거리자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만난 것이 핸드드립 커피의 세계다. 시간과 유량을 확인해가며 천천히 커피를 내리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어렵다) 그것뿐이랴. 수많은 원두 품종과 배전도, 그에 따른 분쇄도 설정이며 드리퍼까지,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새로운 세상이 참으로 흥미롭다. 믹스커피 타 마시던 세대로서 제3의 커피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핸드드립 커피는 레시피와 분쇄도, 물의 온도에 따라 같은 원두라도 맛이 달라질 수 있어 공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다. 나는 무언가 새롭게 알게 되면 기분이 약간 둥실둥실 들뜨는 편이다. 매일 배우고 있는 핸드드립 레시피와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간단하게 기록해 보고 싶다. 언제라도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가장 먼저 기록해두고 싶은 레시피는 테츠 카스야의 4:6 method다. 이과형 두뇌를 가진 나는 직감보다는 숫자와 원리로 설명된 레시피에 끌린다. 테츠 카스야는 월드 브루워스컵 챔피온십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세계 챔피언의 레시피이면서 그 방법이 따라하기 쉬워 기록해 두고 편하게 익혀 보려 한다.
1. 테츠 카스야의 철학
테츠 카스야의 레시피는 '누구나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테츠 카스야가 대회에 출전하던 시기에 바리스타들은 대회에서 본인들만이 할 수 있는 추출법을 구사했고, 조명은 오로지 우승자만을 비추었다고 한다. 그는 누구나 따라하기만 하면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싶어 4:6 method를 착안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 편하게 접하게 하겠다는 그의 고민이 감사하다.
2. 테츠 카스야의 4:6 method
커피와 물의 비율은 1:15다. 다시말해, 원두 20g으로 300g의 커피를 내린다. 분쇄도는 비교적 굵게 세팅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분쇄도로 애를 먹고 있다. 원두의 무게, 유량, 추출 차수 등은 명확하지만 분쇄도는 가지고 있는 그라인더와 그라인더의 상태에 따라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가늠하기 어렵다.) 총 추출시간은 3분 30초 내외다. 4:6에서 4는 맛을, 6은 농도를 결정한다. 300g의 커피를 내린다고 가정해 보자. 300g의 40%는 120g이고, 60%는 180g이다. 처음 120g은 두 번에 나누어 물을 붓는데, 좋은 단맛을 원하면 50g, 70g으로 나누어 붓고 깔끔한 산미를 원하면 70g, 50g으로 나누어 부으면 된다. 120g을 부었다면, 나머지 180g는 원하는 농도에 따라 붓는다. 연한 농도를 원하면 한 번에 180g을 모두 붓고 조금 진한 농도를 원한다면 90g+90g으로 두 번에 나눠 붓고, 진한 농도를 원한다면 60g+60g+60g 세 번에 나눠 물을 붓기만 하면 된다. 4와 6의 조합에 따라 커피의 맛과 농도가 정해지는 브루잉 이론이다.
3. 테츠 카스야의 레시피 적용
실제 나는 최근에 구매한 원두를 내리는데 테츠 카스야의 이론을 적용해 보았다. 원두 20g으로 총 300g의 깔끔한 단맛에 진한 농도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총 5차에 걸쳐 물을 부었다. 각 차마다 시간과 유량은 다음과 같다.
1차 0:00-0:45간 50g의 물을 붓는다. 2차는 0:45-1:30간 70g(총 120g)의 물을 붓는다. 3차는 1:30-2:15간 60g(총 180g)을, 4차는 2:15-2:45간 60g(총 240g)을, 5차는 2:45-3:30간 60g(총 300g)을 부어 마무리한다. 단맛과 신맛 변화의 미세한 차이는 아직 감지하기 어려우나 쓴맛이 제거되었고 후미가 깔끔함을 느꼈다.
아직은 커린이다. 많은 원두를 경험하지 못했고, 여태 유튜브로 유명 바리스타의 핸드드립 장면을 보기만 했을뿐 액티브하게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그라인더 구매를 시작으로 다양한 드리퍼로 커피를 내리고 시음해보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 세계에 살짝 발을 들이고 있는데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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