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향과 맛, 바디
필터커피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향미노트에 대한 의구심이 있어왔습니다. "나는 아주 둔한 미각을 가진 게로 군" 내지는 "과연 이 향미들을 전문가들은 모두 느낀단 말이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죠.
어릴 적 맛있게 먹었던 순대국집을 어른이 되어 찾아간 적이 있는데요. 어릴 때 맛있었던 그 국물이 맹물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이 맛을 내가 당시는 맛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하며 무척 놀랐습니다. 대학생 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칼국수 집도 시간이 흘러 다시 반갑게 찾아갔는데요. 국물이 맹탕이기도 했지만 조미료로 맛을 냈더군요. 그땐 그게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맛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인 듯했습니다. 제대로 된 순댓국과 칼국수를 먹어보지 못했던 것이죠. 회사원이 되고 돈을 벌면서 맛집을 찾아다녔습니다. 미쉐린에 등록되었다거나 수요미식회 따위의 티브이에서 소개하는 맛집 프로그램을 참고해 찾아가 먹어 보았죠. 그런 경험들을 통해 맛이 있다와 없다를 조금 구분하게 된 겁니다. 먹어본 그릇의 개수가 늘수록 미각이 조금은 단련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혹은 경험치가 쌓이면서 취향이 뚜렷하게 생긴 걸 수도 있고요. 그 시절 그 음식들이 맛있게 느껴진 건 맛에 대한 경험 부족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기분도 한몫했을 겁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밥집을 갔었고, 줄을 서고 먹으면서도 하하 호호 웃으면서 종알대고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기분 탓에 무얼 먹어도 맛있었을 테지요.
커피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합니다. 원래 저는 커피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뛰는, 카페인에 취약한 체질을 가진 탓이죠. 그런 탓에 회사원 시절 동료들과 점심 후엔 늘 카페를 갔는데 저는 언제나 티라테나 아이스초고 따위를 주문했습니다. 몸이 커피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커피 맛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엑, 이런 탄 맛을 왜 먹지" 정말 저에게 커피는 재 냄새, 탄 맛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커피와 거리를 둔 채 지내왔습니다.
그런 제가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계기는, 회사를 관두고 육아하며 집에 있을 때입니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나면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무지하게 무료한 겁니다. 집 아닌 어디론가 나갔어야 했습니다. 생일에 받은 키프트카드도 쓸 겸 스타벅스를 가보았습니다. 스타벅스의 너른 공간과 그윽한 커피 향과 쏟아지는 햇살이 왜 그렇게 좋은 겁니까. 혼자 무언갈 열심히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들도 건강한 자극이 되고 보기 좋았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뛰던 것이 계속 마시니 조금씩 적응되어 갔습니다. 커피의 탄 맛은 고이 접어두고 향과 분위기, 기분으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환한 햇살 아래 홀로 앉아 글을 읽거나 쓰며 음악을 듣고, 작가나 예술가의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 행복감이 배가 되는 겁니다. 육아에 찌든 때라 혼자만의 카페타임이 더욱 신났을지도 모릅니다. 카페는 나의 하루를 무료하고 외로운 음지에서 쨍하고 해 뜬 양지로의 이동시켜 주었습니다. 그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참 맛있다 느꼈습니다. 엔도르핀이 쓴 맛을 단 맛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커피 세계에 한 발 들여놓은 저는 서점에서 '커피 인문학'이라는 책을 사고는 스페셜티 커피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도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아주 풍부한 자료가 많았습니다. 보고 읽는 것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다 본격적으로 원두와 그라인더와 드리퍼를 집에 들이면서 직접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는 것이 좋았습니다. 요즘 주로 핸드드립 레시피나 핸드드립 맛집, 커피 상식 등을 알아보는 중인데요. 막연했던 내용을 글로 써보니 커피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한결 선명하게 입력되는 느낌입니다.

커피 맛
커피에 대해 알아가면서 가장 놀랐던 순간이 '컵 노트'입니다. '커피는 탄 맛이야'라고 생각했던 제게 원두에 쓰인 노트는 충격 그 자체였죠. 커피에서 감귤, 블루베리잼, 허니 따위의 향미가 웬 말입니까.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커피를 마셔보지 않아 커피 미각은 둔하군'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향미라 읽고 맛이라 해석을 한 거지요. 혼자 글로 공부하다 보면 오류가 생기고 바로 잡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향미의 대부분은 향을 나타냅니다. 맛은 기본적으로 단 맛, 짠맛, 신 맛, 쓴 맛과 감칠맛이 있는데요. 커피는 대부분 신 맛과 쓴 맛이 납니다. 감귤은 그 신 맛을 표현하는 방법이고요. 커피에서 쓴 맛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다크 초콜릿이나 카카오 따위에서 나는 맛과 유사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레몬, 감귤, 자몽은 커피의 산미를 표현하는 것이고요. 초콜릿은 쓴 맛을 나타낸 겁니다. 향미에 초콜릿이 쓰여있다면 가나 초콜릿처럼 달콤한 맛이 아닌, 다크 초콜릿처럼 약간 쓴 맛을 말하는 겁니다.
커피 향
컵 노트에 허니와 블루베리잼이 있다면 그건 향을 말하는 겁니다. 커피에는 단 맛이 없습니다. 커피 열매의 씨앗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혹은 볶는 과정에서 단 맛이 있었더라도 없어지게 되죠. 커피에서 꿀에서 나는 향과, 블루베리잼의 향이 난다는 뜻입니다. 단 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커피를 대하면 확실히 단 향이 더욱 잘 느껴집니다. 단 것을 먹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커피의 향은 여러 단계에서 우리를 매혹시키는데요. 원두를 분쇄하려고 원두 패키지를 열면 볶은 원두에서 그윽한 향이 새어 나옵니다. 그 원두를 분쇄하면 더욱 짙은 향이 쏟아집니다. 분쇄한 원두의 향을 프래그런스라 합니다. 분쇄된 원두로 커피를 내리면 커피 표면에서 향이 납니다. 그것은 아로마이고요.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향은 노즈이고, 마신 후 끝에 남는 향은 애프터테이스터라 합니다. 각 단계 별 향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시면 커피타임이 더욱 풍요로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고개를 수도 없이 끄덕였습니다. 커피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혹은 미각이 둔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서 기인했던 겁니다.
바디
크리미 같은 표현은 커피의 바디를 표현한 말입니다. 커피의 질감이죠. 혀에 닿았을 때의 촉감인데요. 물과 우유는 둘 다 액체이지만 마실 때 느낌이 다릅니다. 크리미는 맑은 물보다는 조금 더 질감이 있다는 뜻입니다.
커피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좋은 원두를 판매하고 사용하는 커피 전문점을 방문해 커피타임을 가져봐야겠습니다!